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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2월 15일 - 독립운동단체 `신간회` 창립

특별한보통날

by 위치위치 2019. 2. 1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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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3.1운동 100주년입니다

시기에 맞춰 관련된 영화도 많이 개봉 예정이더라고요


일제강점기에 창립한 여러 단체 중

1927년 2월15일에 창립된

신간회에 대해 알아볼게요!


신간회(新幹會)는 1927년 2월 15일에

사회주의, 민족주의 세력들이 결집해서 창립한 항일단체로

1931년 5월까지 지속한 한국의 좌우합작 독립운동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전국구는 물론 해외 지부까지 두고 있는 단체로

회원 수가 3~4만여 명 사이에 이르렀던 대규모 단체였어요


▲1927년 2월 14일, 신간회 창립 모습

(출처:위키백과)


2월14일 또는 2월15일로 예측되네요!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더욱 자세히 알아보도록 할게요



정강정책(政綱政策)은

 ① 조선민족의 정치적·경제적 해방의 실현

 ② 전민족의 현실적 공동이익을 위하여 투쟁함

③ 모든 기회주의 부인

초대 정·부회장에 이상재와 권동진이 각각 추대되었으며

35명의 간사와 하부조직으로 총무·재무·출판·정치문화·조사연구·조직·선전 등 7개 부서를 두었다.

그러나 주요 직책을 민족주의 진영에서 주도하여 사회주의 진영의 불만을 샀다

내부적으로 좌우익의 갈등은 있었지만

신간회는 민족적·정치적·경제적 예속의 탈피,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의 쟁취,

청소년·여성의 형평운동 지원, 파벌주의·족보주의의 배격, 동양척식회사 반대, 근검절약운동 전개 등을

활동목표로 삼아 전국에 지회(支會)와 분회를 조직하며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1930년에는 전국에 140여 개의 지회와 3만 90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였으며

일본에까지 조직된 각 지회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일본의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는 '배일선인(排日鮮人) 가운데 저명한 인물은 거의 여기에 가입하였고

이들이 집회 등에서 하는 언동으로 보아 이 운동의 도달점은

조선의 독립에 있음을 알 수 있다.'라고 당시 신간회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신간회의 세력이 이렇게 성장하자, 일제의 탄압이 거세져서 대규모 집회를 열 수 없었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신간회는 진상조사단을 파견하고 일제에 대해 학생운동의 탄압을 엄중 항의했다

또한 이를 계기로 독립운동을 지향한 민중대회를 열 것을 계획했다가

조병옥(趙炳玉)·이관용(李灌鎔)·이원혁(李源赫) 등 주요 인사 44명이 체포되었다

체포된 인사 가운데 조병옥 등 6명은 실형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신간회의 뿌리가 흔들리게 되었다

표면적으로 좌우익 세력이 합작하여 만든 단체였지만

민족주의 진영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데 대해 사회주의 진영의 불만이 높았다

이들은 신간회의 주요 간부들이 투옥된 사이를 이용하여 해산운동을 벌였으며

1931년 5월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에서 대의원 77명이 참석한 가운데 해소를 결의함으로써 발족한 지 4년만에 해산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간회 [新幹會] (두산백과)




일제 강점기에 제가 살았더라면

너무 무서워서 감당하지 못할 일인 것 같아요
(저는 핵쫄보라서요 ㅜㅠㅠ)



신간회 기념 축하 관계기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신간회 중앙집행위원회 관계기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신간회에 대해 공부하다가 

역사학자의 글을 보았어요


역사는 모든 과학의 기초이며

인간 정신의 최초 산물이다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


역사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관련 글을 자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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